논평 · 성명


논평당신들의 차별을 허락하지 않겠다 — 제23회 서울퀴어문화축제를 앞두고

2022-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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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차별을 허락하지 않겠다
— 제23회 서울퀴어문화축제를 앞두고



서울시는 7월 16일 단 하루 서울퀴어문화축제를 승인했다. 3년 만에 열리는 행사라 기대가 컸는데 하루라니. 아쉽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그 이유를 들어보니 아쉬움은 분노로 바뀐다. 차별과 혐오의 악취가 스멀거린다. 


논평의 제목 ‘당신들의 차별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지난 7월 7일 한겨레 신문에 실린 한채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의 기고문 제목에서 가져왔다. 한채윤은 삼 년 만에 재개되는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어떤 과정을 통해 주최 측이 요구한 6일에서 단 하루짜리 축제로 축소되었는지 차분히 설명한다.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라는 이름만 ‘열린’ 위원회의 회의록을 통해 드러난 팩트다. 


‘그렇게까지 길’ 필요가 없다며 6일 중 반을 날리고 일요일엔 ‘가뜩이나 기독교 단체들이 반대’하니 안된다고 했다. 남은 이틀조차 ‘일반 시민’과의 ‘갈등을 최소화’하는 측면에서 기간을 조금(또 절반!) 줄였다. 심지어 서울퀴어문화축제라는 이름에서 ‘서울’과 ‘문화’를 빼자는 이야기를 서슴지 않고 했단다. 차별과 혐오의 언변(그야말로 변!)이 꼼꼼하게 이어진다. 


어떻게 타인의 존재를 배제하는 차별과 혐오의 언어를 아무렇지 않게 뱉어낼 수 있을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니 그럴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국회 앞에서 단식과 농성을 이어가면서 우리가 그토록 염원했던 차별금지법이 있었다면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의 행동의 근원에는 성소수자를 향한 차별이 있고 차별과 혐오의 시원(始原)은 두려움이다. 그들은 성소수자들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서울퀴어문화축제는 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두려움은 차별과 혐오로, 그리고 순식간에 폭력과 범죄로 진화한다. 그 끝단에 과거 인류가 뼈아프게 겪었던 제노사이드가 있었다.


회의록 곳곳에 등장하는 익명의 위원들은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영원히 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투명하게 보여준다. 너무나 투명해 그들의 의도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다. 최종 목표는 소수자 집단이 위축되거나 사라지는 것이다. 물론 혐오는 일시적으로 소수자 집단을 심리적으로 위축시킬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결코.


그들은 목표를 이루지 못할 것이다. 달성 불가능한 목표임이 명백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살아 숨 쉬고 있는 존재를 마치 없는 것처럼 (혹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여기는 태도가 실재한다. 이 사태를 마주한 우리는 치솟는 분노를 간신히 누르고 있다.


아니, 이제 화를 내야겠다. 프랑스 사회운동가 스테판 에셀이 아흔 살이 넘어 설파했던 앙디네 부(indignez-vous). ‘앙디네’는 단순한 화가 아니라 인간의 기본가치가 훼손당했을 때 자연발생적으로 끓어오르는 도덕적 의분(義憤)을 뜻한다. 지나가 버린 고통에 맴도는 분노이기보다 해결 방법을 찾는 적극적 분노다. 앞으로 전진하는 희망의 분노다. 


7월 16일. 우리는 세상에 희망의 앙디네를 선포할 것이다. 퀴퍼빔 곱게 차려입고 함께 거리로 나가 혐오를 떨치고 희망을 보여줄 것이다. 희망은 밖으로 향하고 두려움은 안으로 움추러든다. 희망은 전진하고 두려움은 물러선다. 우리에겐 더 나은 세상을 희망할 권리가 있다. 


문화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