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 성명


논평시대착오적인 '국가상징공간' 조성 계획을 철회하라.

2023-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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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대 논평] 

시대착오적인 '국가상징공간' 조성 계획을 철회하라.



지난 9월 12일, 서울시 보도자료를 통해 서울시, 대통령 소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 국토교통부가 업무협약을 맺고, ‘국가상징공간’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서울역, 청와대, 독립문 등의 서울의 주요 역사·문화자원을 국가 정체성을 강조하는 공간으로 꾸미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사업 추진을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와 보훈부까지 참여하는 국장급 실무협의체를 구성해 정기적으로 운영한다는 구체적 추진방향도 제시했다. 


여기서 가장 먼저 드는 의문은 국가상징공간이 왜 필요하며, 무엇을 상징하기 위한 것인가이다. 서울시는 ‘국가적 정체성과 국민적 자긍심을 고양’하기 위해서 라며 국가상징공간의 조성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이미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큰 성장을 이뤄낸 우리나라의 세계적 위상을 생각했을 때, 국가적 정체성을 강화하는 것이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인지는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특히, 이미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도시인 서울에 국가 정체성을 드러내는 공간을 조성한다는 것 또한 국가상징공간이라는 명분 아래 서울을 국가주의와 전체주의의 색채로 덧씌우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마저 들게 한다. 


특히, 홍범도 장군 흉상 논란 등을 통해서 노골적인 냉전 시대 사고를 보여주고 있는 윤석열 정부가 추구하는 국가적 정체성에 대한 방향도 우려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 동안 우리사회가 쌓아온 민주적인 가치와 역사를 부각하는 것 보다는 냉전 관련 공간이나 역사를 강조해 때늦은 이념 논란을 불러올 가능성마저 보이기 때문이다. 현 정부가 자행하고 있는 역사왜곡과 철지난 이념 논쟁을 보았을 때, 윤석열 정부는 국가상징공간 조성을 통해 서울이라는 공간을 또 다른 이념 전쟁의 장으로 이용하려 할 공산이 크다. 


또 다른 문제점은 국가상징공간 조성이 철저히 시설과 공간 중심으로 설정되었다는 점이다. 국가상징공간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물리적 공간에 기반한 개념이긴 하지만, 그 안에 담아내는 상징의 대상과 가치, 방법까지 시설과 공간에 한정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공간은 이러한 가치와 철학, 역사적 흐름과 그 흐름 속에서 함께 해온 시민들의 삶을 담아내는 역할로서 의미가 있다. 그런 점에서 어떤 공간이냐 보다 무엇을 담아낼 것이고, 어떠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기억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하지만, 이번 국가상징공간 조성은 ‘국가적 정체성과 국민적 자긍심’이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실체는 없는 껍데기뿐인 계획임을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번 국가상징공간 조성은 철저히 관주도이고 권력자 중심의 계획이라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보도자료에 예시로 제시된 공간은 대부분 시민의 삶과는 관련이 크지 않는 권력자들의 공간에 가깝다는 점이다. 이는 국가상징공간이 추구하는 방향이 시민보다는 국가와 권력에 맞춰져있음을 보여준다. 만약 시민의 삶과 일상, 시민의 관점과 철학이 중요한 가치였다면, 이번 계획을 발표하기 이전에 국가상징공간에 대한 시민적 합의와 참여에 대한 과정이 우선되었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들은 없었다는 것은 일방적으로 국가적 정체성을 시민에게 강요하는 것에 불과하다. 


결국, 이번 국가상징공간 조성은 현정부의 이념 논쟁을 서울이라는 시민의 일상 공간으로 확대시키려는 촌극에 불과하다. 그 과정에 어떠한 민주적 가치도 시민적인 관점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번 계획은 권위주의, 전체주의, 국가주의가 범벅된 시대착오적 발상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국가상징공간 조성계획은 마땅히 철회되어야 한다. 명분도 실체도 없는 국가상징을 내세우려 하기보다는 국가의 진정한 실체인 시민과 함께 우리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논의와 합의의 과정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2023년 9월 13일

문화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