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동논평]
예술인의 안전과 노동을 외면하는
예술인 정책의 전면적 재고가 필요하다
- 고 안영재 성악가를 추모하며
또다시 한 예술인이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났다. 2023년 세종문화회관 오페라 리허설 도중 300kg이 넘는 무대장치에 깔려 척수 손상을 입고 투병하던 성악가 안영재 성악가가 지난 10월 21일 끝내 세상을 떠났다. 고 안영재 성악가는 사고 이후 보행이 어려워 휠체어에 의지해 왔으며 호흡과 발성에도 이상이 생겨 더 이상 노래를 부를 수 없다는 판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상생활은 물론이고 평생을 걸쳐 일궈온 예술가의 삶조차 무너진 고 안영재 성악가는 세종문화회관 측과 오페라 운영사 측의 책임 회피로 억대의 치료비마저 본인이 부담하며 투병해 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이후 산재 사고로 인한 피해를 줄이고 책임자는 엄벌하겠다고 밝히며, 산재 사망 사고는 직보하라고 밝힌 바 있었다. 아마도 고 안영재 성악가의 죽음은 이재명 대통령에게는 전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현행법률상 고 안영재 성악가와 같은 프리랜서 예술인의 노동권은 법적 보호 대상이 아닐뿐더러 산재보험의 의무 적용 대상도 아니기 때문이다.
십수 년에 걸쳐 예술인에 대한 최소한의 사회적 권리 보호를 위해 수많은 법과 제도를 만들어 왔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예술인의 불안정한 삶과 노동이 고 안영재 성악가의 비극적인 죽음을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첫째로는 예술인복지법 제정 이후 정부에서 자랑해 왔던 예술인 산재 보장 제도의 허상이 드러났다. 2012년 도입된 예술인 산재보험은 임의가입 방식이며 보험료 대부분을 예술인이 부담해야 한다. 그렇다 보니 산재보험 가입률이 해마다 한 자릿수밖에는 되지 않을 정도로 유명무실한 제도이다. 윤석열 탄핵 국면에서 한국 사회의 대개혁이 필요하다는 시민사회의 공감으로 만들어졌던 사회 대개혁 논의에서도 이 부분이 지적되었고 100대 과제 중 하나로 예술인 산재보험의 의무 적용과 예술인의 건강권과 안전권 보장을 위한 실효적 대책 마련이 제안된 바 있다. 그러나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제대로 된 논의 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둘째로는 유명무실한 서면계약 의무화와 표준계약서 적용의 문제도 드러났다. 고 안영재 성악가는 오페라 코러스로 참여하면서 서면계약서가 아닌 구두로 계약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로 인해 사고 이후에도 제대로 된 보상이나 치료비 지원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예술인복지법 개정을 통해 서면계약이 의무화 되었다고는 하나, 표준계약서 적용을 강제하지 못하고 법 위반에 따른 처분도 솜방망이 처분에 그치고 있으며, 이러한 제도 실행을 감시하고 관리해야 하는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는 사건 접수 뒤에도 제대로 된 조사와 조치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그나마 이뤄지는 조치도 예술인의 권리 보장을 위한 적극적 개입보다는 조정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어 권리 침해로부터 발생하는 추가적 피해에 대한 보상은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셋째로는 자격 없는 자들이 장악한 문화예술 행정의 문제가 어떠한 비극을 만들어내는지 보여주고 있다. 이번 사고의 일차적 책임은 당연히 공연장 시설물 안전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사고를 초래한 세종문화회관에 있다. 그런데도 세종문화회관 측은 사고에 따른 책임을 부인하면서 소송을 통해 사실관계를 밝히겠다며 오히려 적반하장식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예술인의 사회적 권리를 외면하고 예술인을 철저히 대상화하고 기능적 도구로서 바로 보는 이러한 태도는 예술인에 대한 검열과 배제, 차별을 정책이란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블랙리스트 범죄 수행자들이 일관적으로 보이는 태도이다. 한 예술인의 죽음 앞에서도 뻔뻔한 자기변명과 궤변을 늘어놓는 세종문화회관의 사장이 블랙리스트 국가범죄의 주요 행위자였던 안호상이란 점은 청산하지 못한 과거가 어떻게 우리의 미래를 갉아 먹을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예술인은 죽음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야만 했다. 예술 노동의 문제를 처음으로 사회적 화두로 던졌던 고 구본주 작가의 죽음, 생존의 사각지대로 내몰린 예술인의 처지를 보여줬던 고 최고은 작가의 죽음, 예술인에 대한 긴급 복지 지원의 필요성을 드러낸 고 김운하 배우의 죽음, 그리고 예술인의 건강권과 안전권의 문제를 확인케 한 고 안영재 성악가의 죽음까지. 예술인이 여기 있음을, 함께 일하고 노동하고 존재하고 있음을, 때문에 존중받고 보호받을 당연한 권리가 있음을 확인하기 위하여 우리는 늘 너무 큰 슬픔을 감당해야만 했다. 언제까지 이런 생명을 갉아 먹는 세상에서 예술이란 이름의 거친 노동을 감당하며 살아야 하는 것인가.
지금이라도 서울시와 세종문화회관은 최소한의 책임을 위한 조치를 시행해야 한다. 고 안영재 성악가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최소한의 보상 조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며,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고 공연장의 총괄책임자라 할 수 있는 안호상 사장은 즉각 사퇴해야 한다. 서울시 역시 서울의 대표 문화공간인 세종문화회관에서 벌어진 비극에 대한 책임 있는 조치가 있어야 하며, 먼저 고 안영재 성악가의 사고를 산재로 인정하고 향후 이러한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서울시 공공 공연장에 대한 안전조치 점검과 산업재해 발생 시 보상 체계 마련을 위한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 역시도 현재 유명무실하게 운영되고 있는 예술인 산재보험 제도,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 서면계약 의무화 및 표준계약서 도입 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재점검과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개선책 마련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러한 조치들이 행정관료 중심의 탁상행정에 머물지 않도록 무너진 민관협력 거버넌스의 복원과 실행체계 혁신을 위한 종합적 계획의 수립이 필요하다.
문화연대와 블랙리스트 이후는 지난 10여 년간 한국사회에서 예술인의 삶의 권리와 예술노동의 권리 보호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해 왔고, 현 정책과 제도 수립에 대한 책임이 있는 한 주체로서 현 상황에 대한 책임을 외면하지 않겠다. 앞으로 우리의 과제는 조금 더 나은 제도를 만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세상을 상상하고 만들어 가는 데 있으며, 그 안에서 예술인이 회색의 사각지대가 아닌 자유롭고 안전한 희망의 녹지를 발견할 수 있도록 우리의 책임을 다하겠다.
마지막으로 고 안영재 성악가를 애도하며 그곳에서는 자유롭게 노래하며 춤추시길 기원한다.
2025. 10. 27.
문화연대, 블랙리스트 이후
[공동논평]
예술인의 안전과 노동을 외면하는
예술인 정책의 전면적 재고가 필요하다
- 고 안영재 성악가를 추모하며
또다시 한 예술인이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났다. 2023년 세종문화회관 오페라 리허설 도중 300kg이 넘는 무대장치에 깔려 척수 손상을 입고 투병하던 성악가 안영재 성악가가 지난 10월 21일 끝내 세상을 떠났다. 고 안영재 성악가는 사고 이후 보행이 어려워 휠체어에 의지해 왔으며 호흡과 발성에도 이상이 생겨 더 이상 노래를 부를 수 없다는 판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상생활은 물론이고 평생을 걸쳐 일궈온 예술가의 삶조차 무너진 고 안영재 성악가는 세종문화회관 측과 오페라 운영사 측의 책임 회피로 억대의 치료비마저 본인이 부담하며 투병해 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이후 산재 사고로 인한 피해를 줄이고 책임자는 엄벌하겠다고 밝히며, 산재 사망 사고는 직보하라고 밝힌 바 있었다. 아마도 고 안영재 성악가의 죽음은 이재명 대통령에게는 전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현행법률상 고 안영재 성악가와 같은 프리랜서 예술인의 노동권은 법적 보호 대상이 아닐뿐더러 산재보험의 의무 적용 대상도 아니기 때문이다.
십수 년에 걸쳐 예술인에 대한 최소한의 사회적 권리 보호를 위해 수많은 법과 제도를 만들어 왔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예술인의 불안정한 삶과 노동이 고 안영재 성악가의 비극적인 죽음을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첫째로는 예술인복지법 제정 이후 정부에서 자랑해 왔던 예술인 산재 보장 제도의 허상이 드러났다. 2012년 도입된 예술인 산재보험은 임의가입 방식이며 보험료 대부분을 예술인이 부담해야 한다. 그렇다 보니 산재보험 가입률이 해마다 한 자릿수밖에는 되지 않을 정도로 유명무실한 제도이다. 윤석열 탄핵 국면에서 한국 사회의 대개혁이 필요하다는 시민사회의 공감으로 만들어졌던 사회 대개혁 논의에서도 이 부분이 지적되었고 100대 과제 중 하나로 예술인 산재보험의 의무 적용과 예술인의 건강권과 안전권 보장을 위한 실효적 대책 마련이 제안된 바 있다. 그러나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제대로 된 논의 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둘째로는 유명무실한 서면계약 의무화와 표준계약서 적용의 문제도 드러났다. 고 안영재 성악가는 오페라 코러스로 참여하면서 서면계약서가 아닌 구두로 계약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로 인해 사고 이후에도 제대로 된 보상이나 치료비 지원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예술인복지법 개정을 통해 서면계약이 의무화 되었다고는 하나, 표준계약서 적용을 강제하지 못하고 법 위반에 따른 처분도 솜방망이 처분에 그치고 있으며, 이러한 제도 실행을 감시하고 관리해야 하는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는 사건 접수 뒤에도 제대로 된 조사와 조치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그나마 이뤄지는 조치도 예술인의 권리 보장을 위한 적극적 개입보다는 조정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어 권리 침해로부터 발생하는 추가적 피해에 대한 보상은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셋째로는 자격 없는 자들이 장악한 문화예술 행정의 문제가 어떠한 비극을 만들어내는지 보여주고 있다. 이번 사고의 일차적 책임은 당연히 공연장 시설물 안전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사고를 초래한 세종문화회관에 있다. 그런데도 세종문화회관 측은 사고에 따른 책임을 부인하면서 소송을 통해 사실관계를 밝히겠다며 오히려 적반하장식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예술인의 사회적 권리를 외면하고 예술인을 철저히 대상화하고 기능적 도구로서 바로 보는 이러한 태도는 예술인에 대한 검열과 배제, 차별을 정책이란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블랙리스트 범죄 수행자들이 일관적으로 보이는 태도이다. 한 예술인의 죽음 앞에서도 뻔뻔한 자기변명과 궤변을 늘어놓는 세종문화회관의 사장이 블랙리스트 국가범죄의 주요 행위자였던 안호상이란 점은 청산하지 못한 과거가 어떻게 우리의 미래를 갉아 먹을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예술인은 죽음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야만 했다. 예술 노동의 문제를 처음으로 사회적 화두로 던졌던 고 구본주 작가의 죽음, 생존의 사각지대로 내몰린 예술인의 처지를 보여줬던 고 최고은 작가의 죽음, 예술인에 대한 긴급 복지 지원의 필요성을 드러낸 고 김운하 배우의 죽음, 그리고 예술인의 건강권과 안전권의 문제를 확인케 한 고 안영재 성악가의 죽음까지. 예술인이 여기 있음을, 함께 일하고 노동하고 존재하고 있음을, 때문에 존중받고 보호받을 당연한 권리가 있음을 확인하기 위하여 우리는 늘 너무 큰 슬픔을 감당해야만 했다. 언제까지 이런 생명을 갉아 먹는 세상에서 예술이란 이름의 거친 노동을 감당하며 살아야 하는 것인가.
지금이라도 서울시와 세종문화회관은 최소한의 책임을 위한 조치를 시행해야 한다. 고 안영재 성악가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최소한의 보상 조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며,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고 공연장의 총괄책임자라 할 수 있는 안호상 사장은 즉각 사퇴해야 한다. 서울시 역시 서울의 대표 문화공간인 세종문화회관에서 벌어진 비극에 대한 책임 있는 조치가 있어야 하며, 먼저 고 안영재 성악가의 사고를 산재로 인정하고 향후 이러한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서울시 공공 공연장에 대한 안전조치 점검과 산업재해 발생 시 보상 체계 마련을 위한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 역시도 현재 유명무실하게 운영되고 있는 예술인 산재보험 제도,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 서면계약 의무화 및 표준계약서 도입 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재점검과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개선책 마련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러한 조치들이 행정관료 중심의 탁상행정에 머물지 않도록 무너진 민관협력 거버넌스의 복원과 실행체계 혁신을 위한 종합적 계획의 수립이 필요하다.
문화연대와 블랙리스트 이후는 지난 10여 년간 한국사회에서 예술인의 삶의 권리와 예술노동의 권리 보호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해 왔고, 현 정책과 제도 수립에 대한 책임이 있는 한 주체로서 현 상황에 대한 책임을 외면하지 않겠다. 앞으로 우리의 과제는 조금 더 나은 제도를 만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세상을 상상하고 만들어 가는 데 있으며, 그 안에서 예술인이 회색의 사각지대가 아닌 자유롭고 안전한 희망의 녹지를 발견할 수 있도록 우리의 책임을 다하겠다.
마지막으로 고 안영재 성악가를 애도하며 그곳에서는 자유롭게 노래하며 춤추시길 기원한다.
2025. 10. 27.
문화연대, 블랙리스트 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