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내실 없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내정에 부쳐
- 문화정책에 대한 문재인 정부와 여당의 무책임과 무사안일주의를 비판한다
지난 1월 20일(수), 문재인 대통령은 3차 개각을 단행하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로 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내정했다. 황희 의원은 민주당 홍보위원장, 국회 국방위원회, 국토교통위원회, 4차산업혁명 특별위원회 등 다양한 정책분야에서 활동하며 정책기획력과 이해관계에서의 소통역량을 발휘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평가는 문화·체육·관광 분야의 경험이 전무 하다는 것을 극명하게 증명하는 것과 다름없다.
언론에서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 내정으로 인한 문화예술계의 당혹스러움을 전달하는 보도가 잇따르는 가운데 문화연대를 포함한 일부 문화예술계 현장에서도 깊은 유감과 우려를 표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인사로 인한 문제 지점은 크게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하나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문화·체육·관광 분야 전문성이 전혀 없는 인물’의 내정이다. 장관 내정자의 출신을 넘어 문재인 정권의 임기가 1년 남짓 남은 상황에서 정권 출범 시에 제기되었던 절박한 문화·체육·관광 분야의 정책과제들, 코로나19 상황을 겪으면서 더욱 심각하게 드러난 문제들에 대한 ‘국가 문화정책의 기조와 전략, 철학 및 의지의 부재’가 이번 인사를 통해 다시금 드러났다.
다른 하나는, 이번 개각을 통해 현 정부가 출범하며 공약한 여성 장관 30%를 스스로 무너뜨린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서로 다른 삶의 조건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국민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실현하기 위한 다양성 내각의 구성은커녕, 여성 장관 30%라는 지극히 소극적인 대표성마저도 스스로 파기하였다. 성평등과 문화다양성에 기반 한 문화민주주의의 실현을 도외시한 ‘포용국가’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경험과 전문성 없는 ‘경청’과 ‘소통’의 무책임함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이하 황희 문체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 1월 21일(목), 한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코로나19로 인해 극심한 피해를 입은 문화체육관광계의 현장을 찾아 목소리를 귀담아듣는 것을 우선하겠다고 말했다. 장관이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것은 기본적인 소양이자 책무이다. 중요한 것은 이번 정부 들어 세 번째 장관 교체에 현 정부의 마지막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런 상황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탐색하며 그동안 현장에서 제기되어온 절박한 정책과제들을 학습하는 데에 남은 임기를 소진하는 ‘경청’과 ‘소통’이라면, 우리는 그 무능력함과 안이함에 우려와 분노를 표한다.
경험과 전문성은 단순히 이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문화정책 현장의 실태에 대한 맥락적 이해와 깊이 있는 인식, 기존 정책에 대한 성찰과 대안의 모색,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소통과 협치 등을 포괄하는 것이다. 청와대에서 황희 문체부 장관 후보자를 발탁한 이유로 ‘정책기획력과 소통역량’을 꼽았지만, 문화·체육·관광 분야의 경험과 전문성이 없는 상태에서 어떤 정책기획력과 소통역량을 보여줄 것인지 오히려 우려스럽다. 주어진 시간 동안 신임 장관 후보자에게 우선 필요한 것은 무책임한 정책기획력보다 그간에 요청되고 제기되었던 과제들, 계획으로만 방치되어 있는 과제들의 책임 있는 실행과 추진력이다.
청와대의 장관 후보자 발탁 이유가 이러한 판단조차 담고 있지 못한 점은 더욱 우려스럽다. 일반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정책기획력과 소통역량’으로 설명이 될 만큼, 문화·체육·관광 분야의 정책과제들은 추상적이거나 부차적이지 않다. 현 정부의 출범 당시 긴박하게 공론화되고 수립된 정책과제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현 정부의 중점적인 문화정책 기조 및 과제들은 완수되었는가. 과연 현 정부는 현장의 의견을 바탕으로 스스로 수립한 정책과제들에 대한 추진의지가 있는가. 신임 장관 후보자의 개인적 자질을 넘어 현 정부의 문화정책에 대한 책임과 추진의지가 실종된 것은 아닌가.
문재인 정부의 실종된 문화정책 기조 및 추진의지
경험과 전문성이 없는 인물이 국가 문화정책에 대한 행정 권한을 행사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로 지명됐다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국가 문화정책 기조 및 책임 있는 추진의지가 실종되었다는 방증이다.
단적으로, 문재인 정부 수립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뼈아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한 각종 후속조치들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현 정부를 대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나서서 국민들에게 약속한 예술인권리보장법 제정은 이번 정부가 완수해야 할 우선적 과제이다. 또한 예술인권리보장법은 고질적이고 구조적인 성희롱·성폭력 문제의 정책적 사각지대에 있는 문화계 성희롱·성폭력 근절 및 성평등한 문화예술계 실현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긴급한 범정부대책의 일환이기도 하며, 블랙리스트 사태가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의 불안정한 노동조건 및 생존권과 연루되어 있음을 인식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직업적 권리 보장의 법적 근거 마련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법률안은 20대 국회를 거쳐 21대 국회에 계류되어 있다. 절대다수의 집권당과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신임 장관 내정자에게 요구되는 자격은 정부가 자임한 이 무거운 책무의 책임 있는 ‘실행’이다.
코로나19의 확산은 예상치 못한 사건이었으되, 그것은 예술인권리보장법 제정과 같은 절박한 정책과제들이 담고 있는 문화예술 및 문화산업 분야 종사자들의 생존과 안전, 권리의 문제들을 더욱 심각한 위기로 증폭시켰다. 코로나19가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하고 극명하게 드러내는 만큼, 코로나19로 인한 피해 정도는 이 불평등과 불안정성의 수준을 반영한다. 문화·체육·관광 분야의 극심한 피해는 오랫동안 방치되어온 경제적·사회적·구조적 취약성과 불안정성에 기인한다. 코로나19의 확산 및 장기화로 인해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문화예술·문화산업·콘텐츠산업 분야는 앞당겨진 ‘산업적 특수’와 기업 간 경쟁의 치열한 격전지가 되고 있으나, 예술인과 창조적 노동자들의 생존과 안전, 사회경제적 권리는 여전히 취약하고 불안정하다. 신임 장관 내정자에게 요구되는 코로나19 대책은 이 무거운 책무의 책임 있는 ‘실행’이다.
또한 2004년에 발표한 「창의한국」에 이어, 약 14년 만인 2018년에 국가 문화정책의 중장기 비전과 계획을 담은 「문화비전2030_사람이 있는 문화」와 「새예술정책」이 발표됐다. 「문화비전2030_사람이 있는 문화」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와 문화예술계 미투 운동 등을 통해 드러난 문화계의 취약점과 파행적 구조를 성찰하고 문화행정의 민주화를 위해 민관협치에 기반해 수립되었다. 그러나 해당 정책과제들의 위한 민관협치와 구체적인 실행은 아쉬운 수준이다.
이처럼 국가 문화정책의 전체적인 방향과 흐름에 대한 점검 및 평가가 없는 상태에서 이뤄지는 장관 인사는, 실효성 있는 국가 문화정책 집행을 위한 정무적 판단이라 볼 수 없다. 다른 한편으론, 정책 실행에 있어 장관 개인에 대한 의존도보다 문화행정기관 자체가 현장과 국민을 위해 어떤 행정 구조를 구축하고 방향성을 정립할 것인지가 주요 쟁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기관 내부의 관료성을 타파하고 현장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는 민주적 협력 체계 형성의 과정에서 국가 문화정책의 점검 및 평가, 책임 있는 실행이 필요하다.
여성 장관 30%도 파기한 정부에서 성평등한 문화정책이 가능한가
문화예술계의 성희롱·성폭력 문제와 구조적인 성차별, 체육계의 폭력·성폭력으로 인한 선수 인권 침해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고, 쉽사리 근절되지 않는 만큼 강력한 소신과 의지를 가지고 대처해야 하는 중요한 정책과제이다. 문화예술계 및 체육계에 뿌리 깊은 이 강간문화와 성차별적 구조, 폭력적 관행 등은 우리 사회 전반의 위계적이고 성차별적인 구조, 여성혐오 및 소수자혐오와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기간 동안 남녀동수 내각 구성을 위한 지속적 노력을 공약집에 담았고, 그 출발점으로 여성 장관 비율을 OECD 평균 수준인 30%로 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리고 현 정부 출범 이후 이 30% 선을 아슬아슬하게 유지해 옴으로써, 헌정 사상 최초로 여성 장관 30%를 달성한 정부라고 평가받기도 했다. 그러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포함한 이번 개각에서는 남녀동수 내각은커녕 ‘출발점’으로 공언해온 30%조차도 파기하게 되었다. 정권 후반기에 이르러서도 ‘출발점’이라 지칭한 최소한의 할당마저 지키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뜨린 문재인 정부에게 성평등한 문화정책의 실현은 가능한가.
여성 장관 30%마저 무너뜨리며 발탁된 신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가 심지어 문화·체육·관광 분야의 경험도 전문성도 전무한 인사임은 문화계 및 체육계의 성희롱·성폭력 근절은 물론 성평등한 문화정책의 실현을 망각한 처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문화비전2030_사람이 있는 문화」에서 ‘성평등한 문화정책 실현’이 핵심적인 정책 의제 및 실행과제로서 채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문체부의 산하기관인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들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 및 재발방지 대책을 도외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부당해고를 당한 피해자의 복직을 거부하며 행정소송을 진행중이다. 과연 정부는 이러한 사태에 책임이 없는가. 신임 장관 후보자는 이러한 사태에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
다양한 주체들에 의해, 문화계가 직면한 문제 해결을 위한 끊임없는 제기와 공론화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이에 새로 임명될 장관은 해당 주체들의 목소리에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를테면, (1) 문화행정을 둘러싼 관료주의 체계 개혁(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 해결 및 재발 방지 등), (2) 문화예술계와 체육계의 위계에 의한 폭력·성폭력 근절 및 문화·체육 분야 성평등 실현, (3) 사회적 재난 시대에 문화행정기관의 역할과 실천 방안, (4) 문화예술·문화산업 생태계의 공공성과 공정성, (5) 지역 문화분권 실현을 통한 지역 문화자치 조성, (6) 서로 차별하지 않고 존중하는 문화다양성의 보호와 확립, (7) 문화예술인·종사자 지위와 권리보장 (8) 기후위기에 대한 문화적 대응, (9) 스포츠인권 보호 및 증진, 스포츠기본법 제정, 체육단체 선진화를 위한 구조 개편 등(스포츠 혁신위원회의 권고 이행), 스포츠 지도자 및 체육시설 종사자 지위와 권리 보장 등이 그러하다.
이 외 산적한 문제들 모두 반드시 해결해야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문재인 정부의 부적절한 인사와 황희 문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우려, 더불어 얼마 남지 않은 현 정권의 임기 내 문화정책에 있어 얼마만큼의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민간과의 적극적이고 협력적인 협치를 위한 방안 마련과 문화행정 개혁을 위한 실질적인 법·제도 등의 구조적 개선을 위해 현장에서도 보다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야할 때다.
2021년 1월 25일
문화연대
문재인 정부, 내실 없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내정에 부쳐
- 문화정책에 대한 문재인 정부와 여당의 무책임과 무사안일주의를 비판한다
지난 1월 20일(수), 문재인 대통령은 3차 개각을 단행하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로 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내정했다. 황희 의원은 민주당 홍보위원장, 국회 국방위원회, 국토교통위원회, 4차산업혁명 특별위원회 등 다양한 정책분야에서 활동하며 정책기획력과 이해관계에서의 소통역량을 발휘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평가는 문화·체육·관광 분야의 경험이 전무 하다는 것을 극명하게 증명하는 것과 다름없다.
언론에서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 내정으로 인한 문화예술계의 당혹스러움을 전달하는 보도가 잇따르는 가운데 문화연대를 포함한 일부 문화예술계 현장에서도 깊은 유감과 우려를 표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인사로 인한 문제 지점은 크게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하나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문화·체육·관광 분야 전문성이 전혀 없는 인물’의 내정이다. 장관 내정자의 출신을 넘어 문재인 정권의 임기가 1년 남짓 남은 상황에서 정권 출범 시에 제기되었던 절박한 문화·체육·관광 분야의 정책과제들, 코로나19 상황을 겪으면서 더욱 심각하게 드러난 문제들에 대한 ‘국가 문화정책의 기조와 전략, 철학 및 의지의 부재’가 이번 인사를 통해 다시금 드러났다.
다른 하나는, 이번 개각을 통해 현 정부가 출범하며 공약한 여성 장관 30%를 스스로 무너뜨린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서로 다른 삶의 조건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국민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실현하기 위한 다양성 내각의 구성은커녕, 여성 장관 30%라는 지극히 소극적인 대표성마저도 스스로 파기하였다. 성평등과 문화다양성에 기반 한 문화민주주의의 실현을 도외시한 ‘포용국가’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경험과 전문성 없는 ‘경청’과 ‘소통’의 무책임함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이하 황희 문체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 1월 21일(목), 한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코로나19로 인해 극심한 피해를 입은 문화체육관광계의 현장을 찾아 목소리를 귀담아듣는 것을 우선하겠다고 말했다. 장관이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것은 기본적인 소양이자 책무이다. 중요한 것은 이번 정부 들어 세 번째 장관 교체에 현 정부의 마지막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런 상황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탐색하며 그동안 현장에서 제기되어온 절박한 정책과제들을 학습하는 데에 남은 임기를 소진하는 ‘경청’과 ‘소통’이라면, 우리는 그 무능력함과 안이함에 우려와 분노를 표한다.
경험과 전문성은 단순히 이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문화정책 현장의 실태에 대한 맥락적 이해와 깊이 있는 인식, 기존 정책에 대한 성찰과 대안의 모색,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소통과 협치 등을 포괄하는 것이다. 청와대에서 황희 문체부 장관 후보자를 발탁한 이유로 ‘정책기획력과 소통역량’을 꼽았지만, 문화·체육·관광 분야의 경험과 전문성이 없는 상태에서 어떤 정책기획력과 소통역량을 보여줄 것인지 오히려 우려스럽다. 주어진 시간 동안 신임 장관 후보자에게 우선 필요한 것은 무책임한 정책기획력보다 그간에 요청되고 제기되었던 과제들, 계획으로만 방치되어 있는 과제들의 책임 있는 실행과 추진력이다.
청와대의 장관 후보자 발탁 이유가 이러한 판단조차 담고 있지 못한 점은 더욱 우려스럽다. 일반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정책기획력과 소통역량’으로 설명이 될 만큼, 문화·체육·관광 분야의 정책과제들은 추상적이거나 부차적이지 않다. 현 정부의 출범 당시 긴박하게 공론화되고 수립된 정책과제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현 정부의 중점적인 문화정책 기조 및 과제들은 완수되었는가. 과연 현 정부는 현장의 의견을 바탕으로 스스로 수립한 정책과제들에 대한 추진의지가 있는가. 신임 장관 후보자의 개인적 자질을 넘어 현 정부의 문화정책에 대한 책임과 추진의지가 실종된 것은 아닌가.
문재인 정부의 실종된 문화정책 기조 및 추진의지
경험과 전문성이 없는 인물이 국가 문화정책에 대한 행정 권한을 행사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로 지명됐다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국가 문화정책 기조 및 책임 있는 추진의지가 실종되었다는 방증이다.
단적으로, 문재인 정부 수립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뼈아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한 각종 후속조치들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현 정부를 대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나서서 국민들에게 약속한 예술인권리보장법 제정은 이번 정부가 완수해야 할 우선적 과제이다. 또한 예술인권리보장법은 고질적이고 구조적인 성희롱·성폭력 문제의 정책적 사각지대에 있는 문화계 성희롱·성폭력 근절 및 성평등한 문화예술계 실현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긴급한 범정부대책의 일환이기도 하며, 블랙리스트 사태가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의 불안정한 노동조건 및 생존권과 연루되어 있음을 인식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직업적 권리 보장의 법적 근거 마련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법률안은 20대 국회를 거쳐 21대 국회에 계류되어 있다. 절대다수의 집권당과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신임 장관 내정자에게 요구되는 자격은 정부가 자임한 이 무거운 책무의 책임 있는 ‘실행’이다.
코로나19의 확산은 예상치 못한 사건이었으되, 그것은 예술인권리보장법 제정과 같은 절박한 정책과제들이 담고 있는 문화예술 및 문화산업 분야 종사자들의 생존과 안전, 권리의 문제들을 더욱 심각한 위기로 증폭시켰다. 코로나19가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하고 극명하게 드러내는 만큼, 코로나19로 인한 피해 정도는 이 불평등과 불안정성의 수준을 반영한다. 문화·체육·관광 분야의 극심한 피해는 오랫동안 방치되어온 경제적·사회적·구조적 취약성과 불안정성에 기인한다. 코로나19의 확산 및 장기화로 인해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문화예술·문화산업·콘텐츠산업 분야는 앞당겨진 ‘산업적 특수’와 기업 간 경쟁의 치열한 격전지가 되고 있으나, 예술인과 창조적 노동자들의 생존과 안전, 사회경제적 권리는 여전히 취약하고 불안정하다. 신임 장관 내정자에게 요구되는 코로나19 대책은 이 무거운 책무의 책임 있는 ‘실행’이다.
또한 2004년에 발표한 「창의한국」에 이어, 약 14년 만인 2018년에 국가 문화정책의 중장기 비전과 계획을 담은 「문화비전2030_사람이 있는 문화」와 「새예술정책」이 발표됐다. 「문화비전2030_사람이 있는 문화」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와 문화예술계 미투 운동 등을 통해 드러난 문화계의 취약점과 파행적 구조를 성찰하고 문화행정의 민주화를 위해 민관협치에 기반해 수립되었다. 그러나 해당 정책과제들의 위한 민관협치와 구체적인 실행은 아쉬운 수준이다.
이처럼 국가 문화정책의 전체적인 방향과 흐름에 대한 점검 및 평가가 없는 상태에서 이뤄지는 장관 인사는, 실효성 있는 국가 문화정책 집행을 위한 정무적 판단이라 볼 수 없다. 다른 한편으론, 정책 실행에 있어 장관 개인에 대한 의존도보다 문화행정기관 자체가 현장과 국민을 위해 어떤 행정 구조를 구축하고 방향성을 정립할 것인지가 주요 쟁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기관 내부의 관료성을 타파하고 현장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는 민주적 협력 체계 형성의 과정에서 국가 문화정책의 점검 및 평가, 책임 있는 실행이 필요하다.
여성 장관 30%도 파기한 정부에서 성평등한 문화정책이 가능한가
문화예술계의 성희롱·성폭력 문제와 구조적인 성차별, 체육계의 폭력·성폭력으로 인한 선수 인권 침해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고, 쉽사리 근절되지 않는 만큼 강력한 소신과 의지를 가지고 대처해야 하는 중요한 정책과제이다. 문화예술계 및 체육계에 뿌리 깊은 이 강간문화와 성차별적 구조, 폭력적 관행 등은 우리 사회 전반의 위계적이고 성차별적인 구조, 여성혐오 및 소수자혐오와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기간 동안 남녀동수 내각 구성을 위한 지속적 노력을 공약집에 담았고, 그 출발점으로 여성 장관 비율을 OECD 평균 수준인 30%로 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리고 현 정부 출범 이후 이 30% 선을 아슬아슬하게 유지해 옴으로써, 헌정 사상 최초로 여성 장관 30%를 달성한 정부라고 평가받기도 했다. 그러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포함한 이번 개각에서는 남녀동수 내각은커녕 ‘출발점’으로 공언해온 30%조차도 파기하게 되었다. 정권 후반기에 이르러서도 ‘출발점’이라 지칭한 최소한의 할당마저 지키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뜨린 문재인 정부에게 성평등한 문화정책의 실현은 가능한가.
여성 장관 30%마저 무너뜨리며 발탁된 신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가 심지어 문화·체육·관광 분야의 경험도 전문성도 전무한 인사임은 문화계 및 체육계의 성희롱·성폭력 근절은 물론 성평등한 문화정책의 실현을 망각한 처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문화비전2030_사람이 있는 문화」에서 ‘성평등한 문화정책 실현’이 핵심적인 정책 의제 및 실행과제로서 채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문체부의 산하기관인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들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 및 재발방지 대책을 도외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부당해고를 당한 피해자의 복직을 거부하며 행정소송을 진행중이다. 과연 정부는 이러한 사태에 책임이 없는가. 신임 장관 후보자는 이러한 사태에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
다양한 주체들에 의해, 문화계가 직면한 문제 해결을 위한 끊임없는 제기와 공론화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이에 새로 임명될 장관은 해당 주체들의 목소리에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를테면, (1) 문화행정을 둘러싼 관료주의 체계 개혁(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 해결 및 재발 방지 등), (2) 문화예술계와 체육계의 위계에 의한 폭력·성폭력 근절 및 문화·체육 분야 성평등 실현, (3) 사회적 재난 시대에 문화행정기관의 역할과 실천 방안, (4) 문화예술·문화산업 생태계의 공공성과 공정성, (5) 지역 문화분권 실현을 통한 지역 문화자치 조성, (6) 서로 차별하지 않고 존중하는 문화다양성의 보호와 확립, (7) 문화예술인·종사자 지위와 권리보장 (8) 기후위기에 대한 문화적 대응, (9) 스포츠인권 보호 및 증진, 스포츠기본법 제정, 체육단체 선진화를 위한 구조 개편 등(스포츠 혁신위원회의 권고 이행), 스포츠 지도자 및 체육시설 종사자 지위와 권리 보장 등이 그러하다.
이 외 산적한 문제들 모두 반드시 해결해야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문재인 정부의 부적절한 인사와 황희 문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우려, 더불어 얼마 남지 않은 현 정권의 임기 내 문화정책에 있어 얼마만큼의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민간과의 적극적이고 협력적인 협치를 위한 방안 마련과 문화행정 개혁을 위한 실질적인 법·제도 등의 구조적 개선을 위해 현장에서도 보다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야할 때다.
2021년 1월 25일
문화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