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블랙리스트 민사소송 승소 판결에 부쳐
블랙리스트 국가범죄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다시 시작해야 할 때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국가정보원, 문화체육관광부 등 국가 행정기관을 총 동원해 문화예술인들을 사찰하고 지원배제하고 차별했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법원이 환영할만한 판결을 내렸다. 지난 21일(금)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피해자들에 대해 손해배상을 하라고 선고 한 것이다. 이로써 충북민예총이 제기했던 민사소송과 출판사들이 제기했던 민사소송에 이어 또 한 번 국가폭력을 인정하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이번 법원의 판결은 국가범죄의 실체를 공론화하여 국가폭력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피해자의 정당한 법리적 요구를 반영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또한 2017년부터 진행되고 있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운동에 있어 큰 변곡점 될 것으로 보인다.
2016년 겨울, 문화예술인들은 찬바람 부는 한겨울 광화문에서 말 그대로 풍찬노숙을 했다. 청와대, 국가정보원 등 국가 기관이 주도적으로 문화예술계 인사 및 시민 만여 명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사실이 특검과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의 작품 활동과 생각이 검열당하고 있다는 의심과 정황들이 사실로 밝혀진 것이다. 이는 국가기관이 권한을 남용함으로써 표현의 자유, 학문·예술의 자유와 인격권, 차별받지 않을 권리 등을 침해한 불법 행위였다. ‘블랙리스트’로 인한 작품 활동 방해나 차별적 배제 등 구체적 피해 사례가 추가되는 가운데, 문화예술인들은 자신들을 배제하고 혐오했던 정부와 블랙리스트 책임자들에게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해 긴 싸움을 시작했다.
문화예술인들은 2017년 국가의 폭력적 블랙리스트 작성 및 시행에 대한 정치적·사회적 책임을 묻기 위해 원고들을 모집해(1~4회, 네 차례에 걸쳐 모집) 소송을 제기했다. 그와 더불어 1인 시위, 기자회견, 토론회, 논평‧성명, 집회, 행진, 예술행동 등 무수한 행동들을 멈추지 않았다. 가장 더운 날에도 가장 추웠던 날에도, 국정원 앞에서, 국회에서, 청와대 앞 거리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멈춘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로 21일(금) 판결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마냥 기뻐하고만 있을 수 없다. 여전히 우리가 제기한 1~3차 민사소송은 기일조차 잡히지 않고 있다. 또한 블랙리스트 작성의 핵심 주체인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등에 대한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죄> 파기환송심 역시 진행되지 않고 있다. 이에 더해 블랙리스트 가해세력은 2017년 이전으로 시계를 돌리고 있다. 블랙리스트 책임자 송수근은 계원예술대학교 총장을 역임했고, 안호상 전 국립극장장 역시 반성과 성찰 없이 세종문화회관 사장으로 다시 복귀한 상태다. 그렇게 우리는 아직도 블랙리스트 시대에 살고 있다.
특히, 작년 연말 국회에서는 블랙리스트 피해자 명예회복과 사회적 기억을 담은 ‘표현의 자유 주간 사업’ 예산 그리고 예술인권리보장법 후속 조치 예산 등도 모두 통과 시키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국정 과제 1호라 불렸던 블랙리스트 청산이 지역구 쪽지 예산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현실에 우리는 더 큰 자괴감을 느낀다.
한창 선거철인 지금도 우리는 투명인간으로 존재하고 있다. 블랙리스트 등 박근혜 정부의 적폐를 수사했던 윤석열 후보의 국민의힘은 블랙리스트 작동 당시 정부 여당이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지금까지도 단 한 번의 사과조차 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국회 활동을 통해 블랙리스트 진상 조사 활동을 부정하고, 조사위 예산 및 블랙리스트 피해회복을 위한 예산을 삭감한 바 있다. 이에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힘 모두 예산 삭감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다른 유력 후보인 이재명 후보와 더불어민주당은 어떤가? ‘블랙리스트 적폐청산’이라는 국정과제 1호로 블랙리스트 재발방지와 피해자 회복을 약속했던 문재인정부의 출범 이후, 문화체육관광부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 위원회에서 밝혀진 국가범죄에 대해 현 정부와 여당은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 또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문화예술 공약 등을 봐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를 촉발시키는데 주요 원인이었던 중앙정부 주도의 정책공급 방식, 문화예술인 지원제도의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은 제시되지 않은 채 블랙리스트 피해예술인의 치유에 대한 내용만 언급된 점은 블랙리스트 문제의 핵심을 읽어내지 못했다는 평가로 귀결 될 수밖에 없다.
끝으로 다수의 문화예술인들은 박근혜정부의 블랙리스트로 인한 상처와 피해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대답 없는 정부와 한국 사회를 향해 공식사과를 요구하는 행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이번 4차 소송 판결을 시작으로, 멈춰 있는 1~3차 민사소송이 현 정부 임기 내에 조속히 속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김기춘, 조윤선 등 블랙리스트 핵심 실행자들에 대한 엄중한 법의 심판이 내려져야 한다. 재판부는 이유없이 기일을 연기하지 말고 블랙리스트의 위법성과 불법 행위를 명백하게 밝혀야 한다.
아울러 대한민국 정부와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번 판결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반성과 성찰의 모습을 보여야한다. 반성과 성찰은 이번 판결에 대해 항소를 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이미 항소한 충북민예총의 민사소송에 대해서도 항소를 포기해야 하며, 그것이 블랙리스트 사태를 해결하려는 올바른 태도의 출발점일 것이다. 문화연대는, 국가가 주도하여 저지르는 범죄 사태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끝까지 문제를 제기하고 수많은 다양한 주체들과 함께 연대하여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2022년 1월 26일
문화연대
[논평]
블랙리스트 민사소송 승소 판결에 부쳐
블랙리스트 국가범죄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다시 시작해야 할 때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국가정보원, 문화체육관광부 등 국가 행정기관을 총 동원해 문화예술인들을 사찰하고 지원배제하고 차별했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법원이 환영할만한 판결을 내렸다. 지난 21일(금)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피해자들에 대해 손해배상을 하라고 선고 한 것이다. 이로써 충북민예총이 제기했던 민사소송과 출판사들이 제기했던 민사소송에 이어 또 한 번 국가폭력을 인정하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이번 법원의 판결은 국가범죄의 실체를 공론화하여 국가폭력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피해자의 정당한 법리적 요구를 반영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또한 2017년부터 진행되고 있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운동에 있어 큰 변곡점 될 것으로 보인다.
2016년 겨울, 문화예술인들은 찬바람 부는 한겨울 광화문에서 말 그대로 풍찬노숙을 했다. 청와대, 국가정보원 등 국가 기관이 주도적으로 문화예술계 인사 및 시민 만여 명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사실이 특검과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의 작품 활동과 생각이 검열당하고 있다는 의심과 정황들이 사실로 밝혀진 것이다. 이는 국가기관이 권한을 남용함으로써 표현의 자유, 학문·예술의 자유와 인격권, 차별받지 않을 권리 등을 침해한 불법 행위였다. ‘블랙리스트’로 인한 작품 활동 방해나 차별적 배제 등 구체적 피해 사례가 추가되는 가운데, 문화예술인들은 자신들을 배제하고 혐오했던 정부와 블랙리스트 책임자들에게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해 긴 싸움을 시작했다.
문화예술인들은 2017년 국가의 폭력적 블랙리스트 작성 및 시행에 대한 정치적·사회적 책임을 묻기 위해 원고들을 모집해(1~4회, 네 차례에 걸쳐 모집) 소송을 제기했다. 그와 더불어 1인 시위, 기자회견, 토론회, 논평‧성명, 집회, 행진, 예술행동 등 무수한 행동들을 멈추지 않았다. 가장 더운 날에도 가장 추웠던 날에도, 국정원 앞에서, 국회에서, 청와대 앞 거리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멈춘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로 21일(금) 판결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마냥 기뻐하고만 있을 수 없다. 여전히 우리가 제기한 1~3차 민사소송은 기일조차 잡히지 않고 있다. 또한 블랙리스트 작성의 핵심 주체인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등에 대한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죄> 파기환송심 역시 진행되지 않고 있다. 이에 더해 블랙리스트 가해세력은 2017년 이전으로 시계를 돌리고 있다. 블랙리스트 책임자 송수근은 계원예술대학교 총장을 역임했고, 안호상 전 국립극장장 역시 반성과 성찰 없이 세종문화회관 사장으로 다시 복귀한 상태다. 그렇게 우리는 아직도 블랙리스트 시대에 살고 있다.
특히, 작년 연말 국회에서는 블랙리스트 피해자 명예회복과 사회적 기억을 담은 ‘표현의 자유 주간 사업’ 예산 그리고 예술인권리보장법 후속 조치 예산 등도 모두 통과 시키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국정 과제 1호라 불렸던 블랙리스트 청산이 지역구 쪽지 예산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현실에 우리는 더 큰 자괴감을 느낀다.
한창 선거철인 지금도 우리는 투명인간으로 존재하고 있다. 블랙리스트 등 박근혜 정부의 적폐를 수사했던 윤석열 후보의 국민의힘은 블랙리스트 작동 당시 정부 여당이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지금까지도 단 한 번의 사과조차 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국회 활동을 통해 블랙리스트 진상 조사 활동을 부정하고, 조사위 예산 및 블랙리스트 피해회복을 위한 예산을 삭감한 바 있다. 이에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힘 모두 예산 삭감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다른 유력 후보인 이재명 후보와 더불어민주당은 어떤가? ‘블랙리스트 적폐청산’이라는 국정과제 1호로 블랙리스트 재발방지와 피해자 회복을 약속했던 문재인정부의 출범 이후, 문화체육관광부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 위원회에서 밝혀진 국가범죄에 대해 현 정부와 여당은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 또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문화예술 공약 등을 봐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를 촉발시키는데 주요 원인이었던 중앙정부 주도의 정책공급 방식, 문화예술인 지원제도의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은 제시되지 않은 채 블랙리스트 피해예술인의 치유에 대한 내용만 언급된 점은 블랙리스트 문제의 핵심을 읽어내지 못했다는 평가로 귀결 될 수밖에 없다.
끝으로 다수의 문화예술인들은 박근혜정부의 블랙리스트로 인한 상처와 피해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대답 없는 정부와 한국 사회를 향해 공식사과를 요구하는 행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이번 4차 소송 판결을 시작으로, 멈춰 있는 1~3차 민사소송이 현 정부 임기 내에 조속히 속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김기춘, 조윤선 등 블랙리스트 핵심 실행자들에 대한 엄중한 법의 심판이 내려져야 한다. 재판부는 이유없이 기일을 연기하지 말고 블랙리스트의 위법성과 불법 행위를 명백하게 밝혀야 한다.
아울러 대한민국 정부와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번 판결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반성과 성찰의 모습을 보여야한다. 반성과 성찰은 이번 판결에 대해 항소를 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이미 항소한 충북민예총의 민사소송에 대해서도 항소를 포기해야 하며, 그것이 블랙리스트 사태를 해결하려는 올바른 태도의 출발점일 것이다. 문화연대는, 국가가 주도하여 저지르는 범죄 사태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끝까지 문제를 제기하고 수많은 다양한 주체들과 함께 연대하여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2022년 1월 26일
문화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