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 성명


공동논평유엔 프라이버시 특보, 한국의 프라이버시 침해에 우려를 표하며 개선 권고

경찰과 국가정보원에 대한 독립적인 감독체계 마련해야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자율성과 독립성 보장 촉구

HIV/AIDS 감염인 및 군대 내 성소수자에 대한 프라이버시 침해 개선 권고

[ 원문보기 ] http://act.jinbo.net/wp/41384/


지난 2019년 7월 15일부터 26일, 조셉 카나타치 유엔 프라이버시 특별보고관 (Mr. Joseph CANNATACI,UN Special Rapporteur on the Right to Privacy, 이하 유엔특보)은 한국을 공식 방문하였다. 이 기간 동안 유엔특보는 정부의 각 부처를 방문하고 인권·시민사회단체들과 피해 당사자들을 폭넓게 만나 한국의 프라이버시 실태를 직접 조사하였다. 우리 시민사회는 유엔특보의 공식 방문 전에 한국의 프라이버시 실태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그에게 전달하였으며, 두 차례의 간담회를 통해 보완 설명과 토론을 진행하였다. 우리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경청하고, 때로는 날카로운 질문과 토론을 제기해 주었던 유엔특보에 감사드린다.

유엔 특보는 7월 26일(금) 오후 2시 30분,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그간의 조사결과를 발표하였는데, 이날 배포된 보도자료와 성명서를 통해 국가정보원에 의한 감시와 사찰 등 다양한 영역의 프라이버시 침해 사안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하며, 이를 개선할 것을 한국 정부에 권고하였다.

특히 유엔특보는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감시 사찰과 대구와 밀양에서 벌어진 경찰의 인권침해를 언급하며, 정보기관과 경찰기관에 의해 이루어진 민간인 사찰과 인권침해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표했다. 대구와 밀양에서 발생한 집회시위 참가자에 대한 자의적인 사찰이나 경찰력을 동원한 괴롭힘에 대하여 특보는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표현의 자유 및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유엔특보는 “경찰청, 국가정보원, 국군기무사령부에 의한 프라이버시권 침해를 입증하는 증거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현재 이 기관들이 과거의 책임을 인정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을 약속하는 등 진전이 있지만 “기술 활용에 대한 기본적인 법적 체계나 오남용을 방지하는 안전장치가 심각할 정도로 불충분한 상황”임을 우려하며, 감시사찰 및 정보수집 활동 기능을 감독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현재 국회에는 국정원 개혁을 위한 법안이 16개나 제출되어 있지만, 이에 대한 논의는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정부의 의지 부족과 국회의 책임 방기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수사 권한과 정보 권한을 분리해야 한다는 여러 국제규범에 걸맞도록 한국의 정보경찰은 수사기관인 경찰기관으로부터 폐지되어야 한다. 한국 정부는 유엔인권이사회의 의장국과 이사국을 역임한 지위에 걸맞도록, 유엔특보의 권고에 따라 경찰과 정보기관의 감시사찰 관행을 벗어나 프라이버시권 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국회 또한 20대 국회가 마무리되기 이전에 국정원 개혁 등 유엔 특보가 언급한 여러 개혁적 입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촉구한다.

통신감시와 관련하여 유엔특보는 “영장이 필요 없는 메타데이터(통신자료) 열람 요청은 매년 640만에서 930만건가량으로 충격적인 수준”으로 “다른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보다 열람 요청 수가 훨씬 많다”고 지적하며 열람요청에 대한 사법적 감독체계를 고려할 것을 권고하였다. 국회는 지난 2018년 기지국수사, 실시간 위치추적, 인터넷 패킷감청 등 통신감시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연이은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내년 3월까지 통신비밀보호법을 개정해야 하는 바, 이와 같은 특보의 권고를 수용할 것을 촉구한다.

유엔특보는 한국의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인사 및 예산의 독립성이 결여되어 있는 것에 우려를 표했으며, 개인정보 감독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할 것을 촉구하였다. 또한, 제주도를 비롯한 스마트시티 프로젝트가 프라이버시영향평가도 없이 추진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며, 프로젝트 이행 전에 프라이버시영향평가를 진행하고 “프라이버시 중심설계(privacy by design) 및 프라이버시 기본설정(privacy by default)의 원칙을 준수”할 것을 권고하였다. 유엔특보가 지적한 바와 같이 “개인정보 보호 기본체계는 혁신과 경제성장의 걸림돌이 아니”며, “오히려 국가 발전 과정에서, 특히 신규 경제 분야에 진출하거나 신규 경제 활동에 참여할 때에도 법적으로 불확실한 부분 없이 사용자의 프라이버시권을 온전히 존중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개인보호 기본체계를 엄격히 준수해야”한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4차 산업혁명을 명분으로 빅데이터 산업 활성화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 수준을 완화하려고 하고 있는 바, 이와 같은 유엔특보의 권고를 인식하고 국제 규범에 맞는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을 위해 노력할 것을 촉구한다.

유엔특보는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에서 HIV/AIDS 감염 여부를 알리지 않는 행위를 처벌하거나 구금시설에서 감염 사실을 당사자 동의없이 공개하는 등, HIV/AIDS 감염인에 대한 프라이버시 침해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유엔특보가 권고한 바와 같이, 정부는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 개정, 관련 당사자에 대한 교육 등을 통해 감염인에 대한 차별과 프라이버시 침해가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도록 조치할 것을 촉구한다.

또한, 유엔특보는 군대 내 성소수자(LGBTI)가 “폭력, 차별, 프라이버시권 침해에 노출”되어 있는 상황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며, “한국 군대가 여러 UN기관이 권고한 바에 따라 21세기에 맞지 않는 이런 차별적인 관습을 버릴 것”과 “헌법재판소가 해당 사안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 앞서 정부가 먼저 군형법 92조의6을 폐지”할 것, “성다양성에 관한 교육을 군대 내에서 실시”할 것 등을 권고하였다.

유엔특보는 젠더기반 사이버폭력 분야에 있어 시민단체의 활약을 주목하며,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의 설립과 ‘디지털성범죄 피해방지 종합대책’의 발표를 고무적으로 언급하였다. 하지만 피해지원은 사건이 발생한 이후의 사후조치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또한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가 여전히 직접적인 수사법률지원과 의료지원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부모의 동의를 받을 수 없는 미성년자에 대한 지원이 어렵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나아가 성폭력처벌법으로 처벌하지 못하는 사이버성폭력 영역이 법제화 될 수 있도록 법개정이 필요하며, 경찰은 현행법을 기반으로 사이버범죄 수사에 대한 역량을 강화해야한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유엔 프라이버시 특보의 방한 기간 동안 한국의 상황과 개선 과제를 전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으며, 2020년 3월 유엔 인권이사회에 특보의 최종 보고서에 한국의 실태가 정확하게 반영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다.


2019년 8월 1일

프라이버시 특보 방한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네트워크


(건강과대안,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문화연대, (사)오픈넷,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