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 성명


성명구시대적이고 폐쇄적인 성교육관과 '나다움 어린이책'에 대한 회수 조치를 규탄한다!

2020-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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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구시대적이고 폐쇄적인 성교육관과 '나다움 어린이책'에 대한 일방적인 회수 조치를 규탄 한다!


여성가족부와 롯데그룹,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공동 진행하는 ‘나다움 어린이책 교육문화사업’은 성별 고정관념과 편견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존중하고, 여자다움이나 남자다움이 아닌 ‘나다움’을 찾고 배우기 위한 사업이다.


2019년 1월부터 학계, 출판계, 교육계 등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도서위원회에서는 ‘나다움 어린이책’의 정의와 기준마련을 위한 연구를 진행했으며, 자기긍정∙다양성∙공존이라는 3가지 핵심가치를 도서 선정기준으로 삼았다. 이를 통해 2019년 8월 전문가와 출판사∙작가 등으로부터 추천받은 1,200여종의 도서를 전문가 6인이 검토하여 ‘나다움 어린이책’ 134종을 선정했다. 더불어 그 해에 <나다움을 질문하는 어린이책을 찾아라>라는 주제로 ‘나다움 어린이책’의 다양한 견해와 학교 현장의 의견을 수렴하는 토론회를 거치기도 했다. 2020년에는 추가 선정된 65종을 포함하여 총 199종의 도서를 도서관, 학교 등에 배포했다.


이처럼 ‘나다움 어린이책 교육문화사업’은 학교 현장과 관련 전문가들의 심사숙고를 통해 성인지적 관점의 성교육에 대한 중요성과 필요성 그리고 의미를 강조하며 지금까지 지속해왔다. 해당 사업 자체를 평가한다기보다 성폭력을 근본적으로 근절하기 위한 성인지적 관점의 성평등 교육의 일환으로, ‘나다움 어린이책’을 선정하기 위한 절차와 그 과정을 통해 선정된 도서들이 갖는 유의미함과 가치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미래통합당 김병욱 의원은 지난 8월 25일(화)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나다움 어린이책’ 사업을 통해 배포된 성교육 도서들의 일부 내용이, “동성애를 조장∙미화하고 성관계를 노골적으로 묘사”했다며 해당 사업의 목적과 의미를 퇴색시키는 발언으로 사회적인 논란을 일으켰다. 이에 더해 관련 내용으로 질타를 받은 교육부장관은 문제를 인정하는 듯한 입장을 보였고, 바로 다음 날인 8월 26일(수) 여성가족부는 문제 제기를 받은 7종에 대해 “문화적 수용성 논란이 있다”는 이유로 회수를 결정 했다.


비판의 대상이 된 도서는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 ▲아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놀랍고도 진실한 이야기 ▲걸스토크 ▲엄마는 토끼 아빠는 펭귄 나는 토펭이 ▲여자 남자, 할 일이 따로 정해져 있을까요 ▲자꾸 마음이 끌린다면 ▲우리가족 인권선언(엄마·아빠·딸·아들 4권)등이며, 모든 사람은 성별, 연령, 장애유무, 성적지향, 인종, 종교 등에 상관없이 인권을 누려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인권과 다양성, 성평등, 존중의 가치를 부정하며 시대착오적인 발언을 하는 국회의원은 무지와 차별의 소산이다. 학교 내 성폭력이 발생할 때마다 학교 성교육의 문제를 개선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던 교육부와 헌법적 가치인 성평등을 실현하고 관련 정책을 추진해야 할 책무가 있는 여성가족부. 두 기관은 성인지적 관점의 성평등 교육에 대한 입장과 철학을 제대로 제시하지도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사안을 충분히 검토하는 과정도 없이 불필요한 신속함만을 보여줌으로서 잘못된 지적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처럼 분노와 실망감을 자아내는 상황을 보며 우리가 지금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회수가 결정된 도서 중에는 세계 각국에서 오랫동안 아동인권교육 자료로 활용 중인 도서도 포함하고 있다. 한 국회의원의 문제적 발언이 사업 추진 기관의 일방적인 도서 회수 조치로까지 이어지면서, 우수도서에 대한 선정위원회 심사결과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훼손된 셈이다. 이는 정부 권력의 개입으로 블랙리스트 도서를 양산했었던 출판계의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는 문제 제기도 있다.


또한, 정작 해당 논의에서는 평등하게 교육받을 권리가 있는 ‘나다움’의 실질적인 주체들이 배제됐다. 성교육 도서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에 대한 판단 여부는 교사와 학부모 그리고 아동∙청소년에게 있다. 그럼에도 교육의 실질적 주체들과 논의의 장을 통한 의견 수렴 절차도 없이, 사업이나 정책 중심적인 단순한 사고와 인식으로 성교육의 관점을 후퇴시키면서, 즉각적인 도서 회수를 진행한 것도 매우 유감스러운 지점이다.


마지막으로 논란의 중심에 있는 국회 교육위원회 미래통합당 김병욱 의원, 교육부, 여성가족부 세 주체에게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 미래통합당 김병욱 의원은 국회 교육위원회 위원으로서 성인지적 관점의 성평등 교육의 방향을 함께 모색해야 하지만, 금욕 중심의 시대착오적 성교육관을 바탕으로 무지에 의한 성차별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이에 불필요한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자신의 발언을 철회하는 등의 책임지는 태도와 반성이 있어야 한다.

▷ 교육부는 한국사회에서 그동안 금기시하던 성소수자, 몸의 성장과 변화, 임신과 출산 과정, 가족 다양성 등과 같이 다양성과 인권을 보장하는 성인지적 관점의 ‘포괄적 성교육’에 대한 책무를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교육부 차원의 성인지적 관점의 성평등 교육 인식 및 입장을 표명하지 못한 것에 대한 깊은 성찰과 반성을 바탕으로 '포괄적 성교육'차원의 성교육 인식을 수립해야 한다.

▷ 여성가족부는 현행 회수 절차가 여성가족부 설립 목적인 ‘성평등’가치를 훼손하는 조처임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사태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진정성 있는 사과, 관련하여 다양한 의견 및 비판 지점을 나눌 수 있는 공론장을 조성하는 등의 후속조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국회의원의 잘못된 지적과 여성가족부의 회수 결정으로 인해 '부적절한 책'으로 낙인찍힌 도서들에 대한 회수 조치를 즉각 철회하고, 다양한 가족구성권 및 성평등 정책 등을 추진하는 본연의 역할에 부합하도록 ‘나다움 어린이책 교육문화사업’을 흔들림 없이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정부는 구시대적이고 폐쇄적인 성교육관을 폐기하고, ‘나다움 어린이책’의 핵심가치인 자기 긍정∙다양성∙공존을 지향해야 한다. 나아가 시대 흐름에 부합하는 성인지적 관점의 성평등 및 인권 교육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론 이번에 논란이 된 ‘나다움 어린이책’ 중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에서, 출산 장면의 삽화가 남성적 시선을 중심으로 여성의 신체를 사물화 했다는 중요한 제기도 존재한다. 우수하다는 평을 받은 성평등 콘텐츠가 실상은 성차별적 시선으로 여성의 신체를 대상화 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인지적 관점의 성평등 교육을 위해 활용하고 있거나 혹은 활용하게 될 이미지와 콘텐츠가 "특정 시각에 편중된 것은 아닌지", "어떤 차별적 시선이 내면화되어 있는지" 등을 면밀히 살피면서, 이를 사회적으로 비판하고 논의하는 장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2020 9 2 

문화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