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 성명


공동논평아시아문화원의 하성흡 작가 작품 검열 및 훼손 사건에 부쳐

2021-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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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직도 ‘블랙리스트’ 시대에 살고 있다
- 아시아문화원의 하성흡 작가 작품 검열 및 훼손 사건에 부쳐 -


아시아문화원이 주관하는 전시회의 홍보물을 제작하면서 사용된 원작의 특정문구를 작가의 동의 없이 삭제하는 문화예술 검열사건, 소위 ‘블랙리스트’ 사건이 또 발생했다. 아시아문화원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41주년 특별 전시  홍보물 이미지로 하성흡 작가의  ‘역사의 피뢰침, 윤상원’이라는 작품을 사용하면서 ‘전두환을 찢...’이라는 문구를 삭제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시민사회에서 논란이 일자 아시아문화원은 바로 사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원인을 ‘담당자의 실수’로 축소하며, 사건의 본질과 심각성을 왜곡하고 있다.

그럼 왜 이러한 ‘블랙리스트’ 사건들이 계속 반복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자행되었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한 사후 대응 과정과 연결된다. 당시 블랙리스트 사건은 정부의 주도하에 수천 명의 문화예술인과 문화예술단체를 감시·검열하고, 배제 차별하기 위하여 수많은 공공기관이 총동원된 국가범죄였다. 하지만, 블랙리스트에 가담했던 수많은 이들에 대해서는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고, 블랙리스트 사건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과 제도개선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더욱이 블랙리스트의 주모자 김기춘, 조윤선등에게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로 국가범죄를 축소한 가벼운 처벌을 하는 것조차도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되었다. 형사기소 대상인 공무원 처벌 또한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다. 이렇듯 국가는 블랙리스트 국가범죄를 마치 몇몇 사람들의 일탈과 부정행위 정도로 정리해버리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블랙리스트’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법적 근거인 ‘예술인권리보장법’은 아직도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우리사회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이라는 국가범죄 행위를 목도하고도, 충분한 반성과 성찰을 하지 못했고 어떠한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블랙리스트에 가담했던 수많은 공직자들은 면죄부를 받은 채, 여전히 문화예술행정 요직에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의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몇몇 개인의 과오로 사건을 축소해버린 결과이다. 이는 아시아문화원이 일부 직원의 실수로 얼버무리는 것은 이 정도 해명으로도 충분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만약, 이번 사건 또한 아시아문화원의 무성의한 해명으로 마무리된다면, 우리는 또 다른 제2, 제3의 ‘블랙리스트’ 사건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아시아문화원은 이번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와 책임자에 대한 처벌,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을 해야만 한다. 아울러 이번 사건은 ‘블랙리스트’ 문제 해결을 국정과제로 내세운 정부에서 일어난 사건인만큼, 정부에서도 적극적인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에 힘써야 한다.

우리는 여전히 ‘블랙리스트’의 시대에 살고 있다. 블랙리스트로 인한 피해자들은 지금도 여전히 고통받고 있으며, 블랙리스트로 인한 피해자들은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다. 블랙리스트 가해자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블랙리스트 사건이 반복되지 않기 위한 변화와 혁신에 대한 국가 책임과 노력도 미흡한 상황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블랙리스트’ 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없이는 새로운 미래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문화원은 이번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
* 정부는 이번 사건의 문제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라!
* 국회는 ‘블랙리스트’ 재발 방지를 위한 법인 예술인권리보장법을 반드시 통과시켜라!


2021년 5월 27일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